벽시작 - 벽


'벽'은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알에 깨어난 병아리는 세상 밖에서 삶을 시작하기 위해 껍데기라는 벽을 깨고 나왔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 맨 먼저 옛 주인 흔적을 없애기 위해 마음에 드는 빛깔로 벽에 도배를 한다. 새 삶을 꾸리기 위한 첫 시작을 벽에 알리는 셈이다.

 

벽은 늘 삶과 함께 한다. 벽과 만남은 삶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면 맨 먼저 벽이 눈에 들어온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도 벽을 쳐다보다 잠이 든다.

 

벽은 사이를 갈라놓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집과 집을 또는 방과 방을 구분하는 선이다. 때로는 국가나 민족을 갈라놓을 때 벽을 만든다.


벽 넘어는 알 수 없는 공간이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호기심 유발하는 대상이다. 벽 넘어는 넘보지 못할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넘볼 수 없는 곳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표현을 한다. 넘보는 것까지는 허용하나 대가를 건너지 않으면 넘을 수 없게 만든 벽도 있기는 하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유리벽이 보인다. 유리벽은 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오기를 꺼려한다. 유리벽 안에는 임자 한 사람을 기다리는 속마음이 있다. 그 속마음은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얻을 수 있다. 유리벽은 친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듯 보이나 유리벽 속 만남은 쉽게 이루지지 않는다.

 
벽은 힘들 때 몸을 기댈 수 있는 지지대이기도 하다. 벽에 기댄다는 뜻은 쉬어 가거나 의지한다는 뜻이다.
벽이 허물어짐은 화해를 의미한다. 그러나 재해로 인하여 허물어진 벽은 고통을 남겨준다.
벽은 육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가벼운 칸막이도 있다. 칸막이는 가벼워 보이지만 반드시 가로막아야 하는 곳에 놓여진다.


벽은 삶이다.

사람들은 벽과 함께 울고 웃는다./숲(200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