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스러운 활동의 표본 교과서

20090328_1.jpg예술가들은 예술가 중심의 그룹 활동을 선호한다. 그 안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시골작가들이 중앙무대를 넘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제의 부활과 동시에 중앙무대 활동 위주에서 각기 연고가 있는 지역활동을 하게 된다.

90년대 이전까지 지역예술계 활동이라는 것은 서울에서 작품발표회를 한 다음 고향에서 맛뵙기로 인사를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대중들의 문화적 혜택이 중앙과 지방의 간극이 벌어져 있었던 이유도 지역의 예술가들 활동이 중앙무대 위주였던 탓도 있다.

이젠 제도적으로 지역의 연고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일정 부분 소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의 제도적 지원과 사회 각 분야의 복지들이 향상되면서 지역예술가들도 정보를 찾아 중앙까지 올라가야 할 이유가 많지 않다.

예술가들에게 이 사회를 예견할 수 있는 철학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자체의 예술계 제도화는 예술철학들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로 관위주의 타성에 젖은 주먹구구식 운영이 많다.
예술가들이 지방자치제 테두리 안에서 가당치 않은 제도에 순응하여 90년대 이전처럼 중앙무대를 넘나들며 걸출한 지역출신 예술가 배출은 기대하기 힘든 결과를 가져왔다.

지역의 예술환경은 예술가들의 철학들이 담보되어 있지 않다.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전국적인 현상이고 작은 기초단체에서는 거론조차 하기 창피할 정도로 무의미한 논쟁거리다.
과거에 중앙무대에서 인정을 못받던 지역예술가들이 뱀머리에 만족하면서 텃세를 부리며, 예술 이외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쓰레기 담론들을 주워 먹고 있는 꼴이다. 예술계 이외의 지방정치세력들도 한 몫 한다. 대중들의 미적 가치기준이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검증되지 않은 함량미달 예술가들을 추켜세우며 자신들의 욕구를 발산한다.

지자체는 예술계에서 예술의 존재이유와 존재방식을 기형적으로 변화시키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 제도에 물든 예술가들이 제도가 요구하는 중심의 예술활동을 대중들에게 전파했다는 점이 이 시대에서 치유되기 힘든 정서다.

자신들만 예술가라고 지칭할 뿐 진정한 예술활동 범위는…

지역은 예술의 미학적 검증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로지 제도권의 입김에서 움직이는 현실에서 전문가들이 남아 있을 환경이 되지 못한다. 예술인들이 지키고 다듬어야 할 건설적인 비평들을 친목모임 뒷이야기보다도 재미없는 담론으로 밀어 내고 돈에 눈이 먼 예술가 아닌 예술가들로 타락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예술가들 스스로 미학적 검증이나 활동방법의 논의는 피곤한 존재로 여기며,  자신들만 스스로 예술가라고 지칭할 뿐 진정한 예술활동 범위와는 거리가 멀다.
지역예술을 위축시킨 가장 큰 이유는 지자체의 성숙되지 못한 예술행정과 전문성 없는 제도화를 고집하는데 있다. 어쩌면 지방정치 논리에 편승한 예술가들이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대중으로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이라면 지극히 정상이다.
대중들이 ‘예술’이라고 하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분야로만 인식하고 있는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이다.

지자체에서 지원을 하지 못하면 자생력이 없는 지역예술계의 기이한 현상이 고착화되어 있는 마당에 예술철학의 논의는 아무도 원치 않는다. 어느 지역이나 지방자치제 이후 20여년 동안 이렇다 할 예술계의 성과가 많지 않고 중앙에 밀린 예술가들의 활동무대로 변질되어 있다. 예술이 지자체의 제도에 고용되어 있는 듯한 구조적 폐단은 지속적으로 숨통을 쥐게 되어  일대의 변화가 없으면 회생이 불가능하다. 제도가 파놓은 우물 안에서 세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개구리가 되어 숨을 거둘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예술가들에게는 집념과 이상이라는 유전자가 남아 있어

 그러나, 예술가들에게는 집념과 이상이라는 유전자가 남아 있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을 뿐이지, 모든 신념들을 내던진 것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는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화된 예술활동은 언젠가는 몰락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오게 되어 있다. 예술은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한다.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변화들은 미래의 것들이고, 미래는 과거의 흠결들을 거울삼아 시행착오를 줄이려 할 것이다. 자신들도 모르게 제도에 물들어 기록되어 있는 현 시대의 예술은 후손들에 의해 역사에서 실패하고 치욕스러운 활동의 표본처럼 교과서에 등장할 것이니 그래도 한 시대의 실패한 예술가들이 맞기는 맞다./계룡문화 2009 봄

*이 글은 계룡문화 2009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