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사진작가/박미하일<발가벗은 사진작가>의 저자 박미하일 작가를 만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한눈에 보아도 선한 인상에 마음까지 편하게 느껴지는 그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불행한 역사의 희생양이었던 고려인의 후예를 직접만나고 그의 작품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엿볼 수 있던 것이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가슴 아픈 역사의 잔상을 피부로 느끼는 아픔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려인은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주정책으로 하루아침에 집과 고향을 버리고 화물열차에 강제로 실렸다. 기차를 타기 전 독립운동가나 지식인 등 스탈린의 정책에 반대할 만한 사람들은  '일본의 앞잡이'라는 핑계로 총살되거나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사전에 어디로 간다는 통보조차 없이 화장실은 물론 마실 물 한 모금 없는 열차에 빼곡히 실려 길게는 50여 일 동안 6천km를 이주했다.

이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도착한 땅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 지금은 독립이 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이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지대나 먹을 것 한 톨 없는 동토에 내버려진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 거센 눈보라와 추위를 피하고 집을 떠나기 전 조금씩 챙겨온 식량을 나눠 먹으며 생명을 부지했다. 이들의 삶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발가벗은 사진작가>에서도 이들이 겪었을 내면의 혼란과 절망 그리고 사랑과 희망이  그들의 후손인 사진사 드미뜨리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드미뜨리는 사진작가다. 요즘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오래된 독일산 사진기를 통해 작품사진을 찍고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무자비하게 찢어버린다. 사진 찍는 일에 몰두 하다보면 주변에 대한 지각력이 마비되어 쓸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 할 것이라는 이유다.

러시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트기’인 그는 스승 에밀리아에게서 사랑과 사진을 알게 된다. 세 개의 사과가 있는 사진을 남기고 외국으로 떠나간 스승과 얼굴보다 손을 먼저 사랑하게 된 알리나, 한국인이면서도 한 번도 한국어로 말 한 적이 없는 어머니와, 마네킹을 보고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드미뜨리리가 일상에 안주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찾아 현실을 방황하는 주인공 드미뜨리를 보여 준다.
 
마침내 드미뜨리가 모든 자신의 사진을 다 찢더라도 마지막 까지 남기고 싶다던 스승의 사진을 판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으로 착각하여 실수로 망가트린 마네킹 값을 변상하고, 그만의 축제를 위하여 부랑자에게 적지 않은 돈을 건네준다.
 
그날 밤 드미뜨리는 떼강도를 만나 죽도록 맞고 돈을 강탈당한다. “인간의 존재는 자신과 비슷한 낯짝을 때리는 것일 뿐”이라며 피투성이의 발가벗은 자신을 거울 속에서 바라본다.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오래된 흑백영화 속의 우울한 날씨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현실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존재감의 상실이 자신의 작품을 찢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고려인의 후예로 어두운 과거를 의식의 내면에 묻어 두고 반쪽의 러시아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표상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대변한다.  무차별 폭력에 반항 한 번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분신 같은 스승이자 연인의 작품과 바꾼 돈을 잃고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현실 속의 고려인의  자화상이다./임영민

박 미하일 PARK MIKHAIL (엄사리 거주)parkmi.jpg

1949년 우즈베키스탄 출생하여 타지키스탄 두산베 미술대학 졸업했다. 1976년 구 소년에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장편소설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등 다수의 소설, 산문 시집 등을 출판했다.
1999년 한국 해외문학 문학상(단편소설 “기다림”) 수상, 2001년는 재외 한국인 재단 및 펜클럽 문학상(단편소설 “해바라기”) 수상, 2001년 러시아 가따예프 문학상(중편소설 “발가벗은 사진작가”) 수상, 2006년 KBS 문학상 수상을 수상했다.

<그림 개인 전시회>
•러시아, 모스크바(1988, 1999, 2001), •프랑스, 파리(1995,2006),•카자흐스탄, 알마아따(1997, 2005),•한국, 서울(1993, 1995, 2000, 2004)

*이 자료는 계룡문화 2009 봄호에 실린 자료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