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최영민어서 마흔이 되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한참 꽃다운 이십대엔. 좋은 때를 좋은 줄 모르고 지내다 보니 나이 든 여자의 언뜻언뜻 보이는 흰머리와 잔주름이 오히려 생의 여유를 찾은 증표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제 내 입으로 그 말을 내뱉은 지 10년도 넘게 훌쩍 세월을 보내고 나니 정말 10년 전보다는 무언가 정리된 느낌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생의 여유나 확신으로만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바꿔보지 못하고 끝내버릴 것 같은 안타까움과 불안함이 점점 자리를 넓혀가고 있기에 삶은 언제나 아쉬움의 연속인 듯하다.

 

문정희의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는 중년에 이른 시인의 일상과 인생에 관한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제목을 훑어보면 '머리 감는 여자' '키 큰 남자를 보면' '유방' '보라색 여름바지' '알몸노래' '나목을 위하여' '몸이 큰 여자' 등 주로 나이 든 여자의 일상과 그 일상의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고, 거짓사랑의 얼굴까지 수용할 만큼 시인의 영혼은 넓고 깊기만 하다.

 '문정희 시집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시에서는 가정이라는 사회 속에서 남성의 보조자로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그 남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과 동일시하고, 남편이 떠난 뒷자리를 정리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수많은 여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각성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개밥의 도토리'처럼 혹은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는 중년 여성의 현실이 너무 솔직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빗겨갈 수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가 사회전체의 여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유방'이라는 시는 시인 자신의 몸으로 시선이 집약되어 있다. 여성의 '유방'은 참 다용도다. 신체기관 중에서 유일하게 튀어나온 곳, 유방은 부르는 이름에 따라 모성을 간직하기도, 섹슈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지금은 커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얼마 전 까지만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을 부끄러워하는 소녀들이 많았고, 그 소녀들이 자라 중년이 된 세대는 아직도 큰 가슴을 민망스럽게 생각한다.

 

반대로 남자의 신체기관 중 유일하게 돌출된 성기는 여성의 '유방'과 달리 언제나 큰 것을 지향하고 다산과 다복의 상징이 되어 예부터 남근 바위나 목각으로까지 만들어져 남자들의 의식 속에서, 고추 달고 태어난 순간 여자와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뿌리 깊게 안고 살아가게 된다. 의식의 차이는 곧 행동의 차이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사회에 태어난 여성은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해 여자로 만들어지게 된다.

 

'유방' 조차도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유방암 사진을 찍기 위해 '맨살로/차가운/기계를/안고 서서//'야 내 것임을 느끼는 화자는 시인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며 '몸이 큰 여자'들인 것이다. 을유년 새해에는 새벽닭 울음이 어둠을 밀어내듯 여성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제약과 불평등이 사라지고 이 땅의 수많은 여학생들이 삶의 주체로서 행복해지는 세상이 도래하길 고대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길에 시인처럼 '시/ 몇/ 편을// 통행세로/ 내고/싶다// '

 

'글/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