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내 안을 떠도는 황홀한 화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미쳐야 미친다 [최영민의 책이야기] '미쳐야 미친다'/ 정 민/ 푸른역사

 

이 말은 책 제목이자 저자 정 민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어온 화두였다고 한다. 우리들도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미쳐야 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그만큼 어느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광인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가능한 일임을 표현한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는 바로 이런 사람들, 18세기 조선사회 참 지식인들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으로 1부 벽에 들린 사람들의 이야기, 2부 맛난 만남에 대해, 3부 일상 속의 깨달음이라는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는 벽(癖)에 들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꽃에 미쳐 아침에 눈만 뜨면 꽃밭으로 달려가 꽃 아래에서 자리를 깔고 누워 꽃 관찰로 소일하고, 1년 동안  꽃그림을 그려 <백화보>라는 그림책을 완성한 김 군, 돌만 보면 돌의 재질을 가리지 않고 벼루를 깎았던 정철조, 재주가 뛰어나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관상감에 발탁되었으나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속칭 왕따를 당해 벼슬길에서 물러나 <주역> 공부로 시간을 보내다가, 굶어죽은 천재 김 영 등, 조선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서 살 수 밖에 없었던 벽(癖)에 빠진 마이너리거들의 이야기이다. 세상은 재주 많은 사람들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손가락만 보라고 작당을 하고 덤비는 꼴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심을 잡고 살기란 힘들기 마련이다.

 

2부에서는 맛난 만남이라는 부제아래 정약용과 제자 황 상간의 삶을 바꾼 만남을 비롯해서, 허 균과 화가 이 정 사이의 우정 등 상생의 만남에 대한 짧은 글이 5편 묶여 있다. 정약용이 제자 황 상을 만난 건 천주학쟁이로 몰려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라고 한다. 그 때 황 상은 15살이었는데 서울에서 온 훌륭한 선생님을 뵙고 자신이 머리도 나쁘고, 앞뒤가 꼭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라는데 공부를 할 수 있느냐 물었던 모양이다. 정약용은 이런 질문을 받고 배우는 사람에게는 오직 부지런함이 최고선임을 인식시켜 주어 황 상은 회갑을 넘긴 나이에도 그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한다.

 

허 균보다 아홉 살 아래였던 이 정은 화공 이였다. 당시 이 정은 기생집에 얹혀살면서 그림을 그려주며 살았던 미천한 신세였으나, 당시 둘은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돈독히 했다. 허 균은 이 정에게 자신이 꿈꾸는 집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이런 집을 그려주게'하고 써 내려간 허 균의 상상속의 집은 이 정의 이른 죽음으로 그려지지는 못했고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고 반역을 꿈꾸던 허 균 역시 쉰 살에 세상을 뜨게 된다.

진짜 눈에는 진짜만 보이고 가짜 눈에는 가짜만 보이는 법이다. 친구란 닮은꼴이라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맛난 만남'이 있었던가?

 

3부는 일상속의 깨달음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허 균의 <수잠(睡箴)>이란 글을 통해서 눈은 자더라도 마음은 깨어 있으며, 마음은 순리대로 따를 것이며 그리하면 텅 비고 고요해진다는 경계를 배우게 되고, 골초였던 이 옥이 지은 담배에 관한 <연경(煙經)>이란 책이 담배를 소재로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에 대한 비판까지 이끌어 내는 광대무변한 사유를 만나게 되…….

 

이 책의 재미는 책 말미에 정 선이 그린 <세검정도(洗劍亭圖)>를 보는 양 마음에 세찬 빗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만 번 이상 읽은 김득신의 우둔함이 죽비가 되어 당신의 어깨를 내리칠 것이다.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박제가의 '묘향산소기'에서)듯, 미치지 못한 자아에 여울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은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지'듯 미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맛난 만남을 꿈꾸게 될 것이다. 미치려면(及) 미쳐야 한다(狂). 요즘 내 안을 떠도는 황홀한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