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책이야기] '-어른이 읽는 동화, \'바리공주\'(김선우, 열림원)

 

n090801_4.jpg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죄로 버려진 공주, 그 공주가 병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약수를 구해온다는 이야기가 모든 바리데기 무가의 기본 줄거리다. 이 무가는 전통적인 망자 천도굿인 지노귀굿과 오구굿에서 불려져 온 서사무가로 경상도에서는 바리데기로, 전라도에서는 오구풀이로, 서울에서는 바리공주로 불려지며 그 명칭은 \'바리\', \'버리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버려진 아이\'라는 뜻이다.

 

 김선우의 \'바리공주\'는 바리데기 기본 서사에 김선우 만의 독특한 바리데기 담론을 개입시켰다. 가부장제 효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여성의 욕망과 여성의 의지로 생명의 약수를 구해오고, 모든 사물과 사람을 품어 안는 화해와 포용의 여성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바리공주가 거쳐야 하는 난관이 단순히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노동이 아니라 한 개의 돌을 올려 탑을 쌓기 까지는 돌 하나를 빚어낸 하늘의 마음과 돌의 마음까지 읽어 내야 한다는 생태적 상상력과 원형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되새기게 한다.

 

한편 그림책 화가 정경심의 삽화가 들어 있어 신화가 줄 수 있는 거리감을 극복하고 \'바리공주\'이야기에 현장감을 되살려 책 읽기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고, 고어체가 주는 딱딱함 마저 희석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r\n 김선우에게 재현된 \'바리공주\'의 줄거리는 이렇다. \r\n\r\n 바리공주는 불나국의 오구대왕과 길대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번째 딸이다. 그러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인 오구대왕의 명으로 옥함 속에 넣어져 불나국 국경에 있는 수미산에 버려지게 된다. 하지만 수미산 산신님이 사시사철 주시는 것을 비럭질해서 먹고 살아서 비럭할멈 비럭할아범이라고 자칭하는 노인들에게 발견되어 열다섯 해를 잘 자라게 된다.

 

그 즘 불나국의 오구대왕이 깊은 병에 들었는데, 꿈속에 동자가 나타나 서천서역국 무장승의 약수와 뼈와 살을 살리는 오색도화꽃만이 목숨을 살릴 수 있으며 그 일을 위해 바리공주가 있어야 함을 예시해 주게 된다. 결국 바리공주는 \'아버님께 하루 저녁 신세지고 어머님 뱃속에서 열 달 피를 받아 세상에 나왔으니 그 은공을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서천서역국으로 떠나게 된다. 얼굴엔 재를 칠하고 무쇠 두루마기를 입고 무쇠 신을 신고서…….

 

서천서역국이란 \'시간이 공간 속을 헤매고 낮밤이 얼크러지며 계절이 저 좋은 대로 휘어가기 십상\'인 곳이다. 그 곳에서 청태산 마고할미를 만나 언 물이 다시 녹아내리는 때까지 빨래를 해주고, 다시 백발노인을 만나 108일 동안 탑을 쌓아야 한다는 숙제를 풀고, 삼백 마지기 밭을 갈아주고 삼백 바구니 염주열매를 따주는 고된 노동 끝에 육로 육만 리 길을 지나 금주령과 낭화를 얻어 지옥 길과 약수마저 무사히 건너게 된다.

 

모든 관문을 다 통과했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무장승을 만나게 된다. 무장승은 30년 전 하늘에서 죄를 짓고 내려와 100년 동안 약수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30년을 채우고 인간의 여자를 만나 아들 삼형제를 얻으면 죄를 탕감 받고 다시 하늘로 승천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 팔만사천 지옥을 지나고 약수를 건너 무장승을 만났으나, 무장승은 약수를 지키기만 할뿐 서천의 약수를 허락하는 것은 \'신목\'의 일이어서, 신목(우주목)에 엎드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그러나 신목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다시 삼일 밤을 신목 앞에서 보낸 바리공주는 홀연 무장승에게 청혼을 하게 이른다.

 

 무장승과 결혼한 바리공주는 아들 삼형제를 낳고 신목이 자신에게 요구한 물값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가장 먼저 치유해야 할 것이 자신이며 사랑을 통해 성숙해진 인간만이 생명의 약수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깨달음을 통해 신목으로부터 약수를 구한 바리공주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버려짐으로서 사랑을 얻은 존재이니 버려진 것들의 원과 혼을 이끄는\' 만신의 인로왕이 되어 황천강에서 죽은 넋을 위로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무쇠 옷을 입고 씩씩하게 저승세계로 걸어가는 바리공주의 모습에서 자신의 상처뿐 아니라 타인의 아픔까지 보듬을 줄 아는 여성과 여성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책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 생명수, 곧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희망과 사랑이라는 빛나는 보석은 잠자는 공주를 깨워주는 왕자에게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개척하는 사람, 그리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생명수(희망과 사랑)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유일한 \'물값\'임을 \'바리공주\'를 통해 전해 주고 있다./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