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건널목 봄 햇살이 드리우면 긴장감이 풀려 졸리다.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을 핑계로 게을러진다. 가을이면 단풍놀이를 향한 기대감에 차있다. 겨울이면 농사꾼도 아니면서 농한기라고 으름장 놓는다.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언제나 나른한 여유를 즐기려 호시탐탐 주변과 환경을 여유로움의 도구로 활용한다.

 

사람들의 여유와 핑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 계절 내내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 있다.

땡땡땡 종이 울리는 기찻길 건널목. 사람이 먼저가 아닌 육중한 기차가 먼저다. 기차는 양보도 하지 않고 신호도 없다. 길을 건널 때 사람만 지켜야 하는 신호등과 가로막은 막대기가 주인이다.


기찻길 건널목 저 편에 정숙한 여인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서 있고, 마주보는 남정네의 눈길은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막대기가 올라가고 가까이 다가올 여인을 젖가슴에만 관심이 있다.

 

짧은 순간 기차가 두 사람의 눈길을 갈라놓았다가 커튼 거치듯 기차가 빠져 나가면, 4막 5장으로 반전되어 긴장했던 몸들은 바삐 움직인다. 사람들이 건너간 뒤에는 먼 기차의 꽁무니 배경이 나오고 역무원 아저씨의 전장정리와 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이 그려진다.

 

기차가 건널목을 통과하는 짧은 시간은 수없이 많은 로맨스를 만들어 냈고, 사랑을 연결하는 드라마에 빠짐이 없다. 소설속 배경이나 시창작에도 기찻길 건널목은 단골이고, 서민들의 삶을 그린 화가들의 그림에도 희미하게 등장하여 예술창작의 주요한 소재로도 활용된다.

떠나는 여인, 꿈많은 여고생, 여인을 그리는 남정네 등, 기구한 사연들이 기찻길 건널목에서 만들어 진다. 하지만 정작 기찻길 옆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정서가 없다고 잘라 말하여 기찻길 건널목의 환상이 깨진다.  

 

앗! ‘땡땡땡 건널목’이 없어졌다!없어진 철도건널목

 

철도 사진 한 장이 필요하여 두계시장 앞 철도건널목에 갔다. 당연히 기다리고 있을 신호등, 깃발,  역무원 아저씨, 막대기가 안보이고 방음막으로 떡 가로 막혀 있었다.

 

유일하게 아랫장터로 통하는 길이었는데, 마을 사람들 어디로 다니지? 그러고보니 이곳을 지날 때마다 무슨 공사를 해서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리둥절하여 사방을 둘러보니 지하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두계시장 윗장터와 아랫장터 사이에 놓여 있던 철도건널목이 사라지고 지하도가 개통된 것이다. 철도 건널목 관리에 따른 인력을 줄이고 보행사고의 위험을 차단했다.

 

건널목이 없어졌다고 아쉬운 점은 없었지만, 왠지 아랫동네가 세상과 더 차단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지하도를 타고 아랫장터로 내려갔다.

 

아랫장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었지만, 건널목 저편에서 내려 볼 때와는 더욱 적막한 기운이 돌았다.

장날 많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는 두계장터, 철길 사이로 아랫장터와 윗장터로 나뉘어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전하고, 이곳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윗장터와 아랫장터를 연결하는 지하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 배영직(1882,1926, 두마면 입암리 341 출신)은 4월 1일 오후 4시 경 두계 장터에서 국권회복의 중요성을 역설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수백명의 장꾼들과 시위하여 장터 일대는 만세소리로 하늘을 찔렀다고 전한다.

 

지난 자료들을 찾아보니 다행이 2년 전에 촬영해 놓았던 건널목 사진과 동영상 자료가 있었다. 새로 생성할 수 없는 자료를 찾았을 때 느끼는 희열감을 맛보았다. 지난 자료로 기록해야 할 목록에 포함되었다. 자료기록. 이거 병이다. 내가 살아온 삶도 기록을 못하고 있는데... 분하다. /이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