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식계룡시가 유동리 일대에 조성중인 복합문화공간의 명칭을 시민들에게 공모하여 심의한 결과 '계룡문화예술의 전당'이라는 명칭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계룡시에서는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고 그 명칭을 사용할 지의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창의성 있고, 좋은 명칭을 만들겠다고 공모까지 했는데, 그 흔한 예술의 전당이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 측에서 다른 지자체에서 같은 명칭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소송까지 진행되었는데,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을 했고, 지난해 대법원에서는 이를 뒤업는 판결이 있었다.

 

타 자치단체에서도 예술의 전당 명칭을 사용해도 법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기관 명칭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한 것은 영 내키지 않는 결과다.

 

문화예술의 기관 명칭은 문화변동에 따라 시대적으로 변화해 왔다.(아래-문화예술 기관 명칭 '브랜드 가치' 최우선 고려해야) 결국 계룡시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사용했고, 논란을 빚어 유명세를 탔던 기관명칭을 그대로 선정한 셈이다. 예술의 전당이라는 명칭은 이미 20여년 전의 구시대적 기관명칭에 불과하다. 다양성 있는 문화변동을 적극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라는 생각이다.

 

 

[2008년 10월, 계룡예술 관련자료] 문화예술 기관명칭 변천사
 문화예술 기관명칭 ‘브랜드 가치’ 최우선  고려해야

 

엄사면 유동리 일대에 ‘계룡복합문화회관’이 지난해 첫 삽을 뜨고 공사에 들어갔다(BTL). 계룡시와 계룡시장은 각종 언론의 연말 및 신년 인터뷰 등을 통해 복합문화회관의 준공으로 시민들의 문화예술 복지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는 등의 업적을 내보였다.

 

기관명칭만 들어보면 마치 미국의 게티센터와 같은 대규모 문화예술센터가 들어서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민편의 시설을 위한 건물을 짓는 것에 불과하고,  기관명칭(계룡복합문화회관)을 지나치게 구시대적 행정용어로 치장하여 업적이 부풀려질 소지가 있다.

 

복합문화회관의 기능을 보면, 문화관광상품으로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기능이 없다. 그저 사용자 편의에 의한 대관위주의 시설운영이 전부일 가능성이 많다. 소프트웨어 없이 우선 건물만 올려놓고 시작하겠다는 발상이다. 흔한 회관 하나 신축하면서 모든 문화예술 복지가 완전하게 해결될 것처럼 기대하고 있다.

 

구시대적 행정용어 문화관광 브랜드 가치 없어

 

과거 70년대 이전에 마을 입구나 중심에 자리하던 ‘마을회관’이 있었다. 현재 마을마다 운영되고 있는 마을회관의 기능과는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곳은 주민들이 유일하게 문화적 혜택을 받거나 정보를 교환하던 곳이었다. 문명의 혜택도 그곳에서 가장 먼저 느꼈다. 마을회관에 가장 먼저 전기나 전화가 들어왔다. 마을사람들이 회의를 하거나 잔치를 할 수 있는 곳도 마을회관이 유일한 장소였다.

 

70년대 산업화 시대와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문화변동도 함께 했다. 군단위 시골까지 대형 군민회관이 들어섰고, 도심에는 시민회관이 들어섰다.

 

그러나 시민(또는 군민)회관은 문화복지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연설을 하거나 반공의식화 교육을 위해 웅변대회 같은 것을 하고 싶은 강당이 필요했다. 시민회관이라는 곳은 1년에 몇 번 정치인들의 연설에 필요한 강당운영이 전부였고 그곳에서 주민들의 문화활동이 존재할 여건은 충분하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민회관은 문화예술 활동을 옵션으로 끼워 ‘문화예술회관’이라는 명칭으로 변천되었다. 그 전까지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보면, 미술전시회는 아가씨가 커피를 배달하는 다방의 벽면을 이용하거나 돈이 있는 사람들은 대도시의 사설화랑을 이용했고, 음악회는 교회나 대학교 강당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인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찾아간 곳이 정치인들이 연설이나 하던 시민회관의 앞마당, 벽, 강당을 활용하면서 전국적으로 모든 시민회관을 문화예술회관으로 변모시키는 일익을 담당했다.
90년대 이후에는 문화예술의 브랜드 가치를 추구하며 ‘예술의 전당'과 같은 전문성 있는 기관명칭들이 탄생했고, 이후 지역에서는 지역특징을 살린 문화예술 기관명칭들이 등장하여 전국적으로 특색 있고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생성되었다.

 

즉, 시대적 문화변동에 따라 70년대 전후에는 ‘마을회관’, 80년대는 '군민(시민)회관', 90년대는 ‘예술의 전당’, 현재는 ‘(지역특징을 내세운 기관)’ 등의 문화예술 기관명칭 변천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사업을 추진하는 계룡시에 전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다. 문화변동을 가장 빠르게 느끼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최소한의 조언이라도 있었다면 변화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문화예술 단체들이 일부를 제외하면 전문성이 의심가는 단체가 많고 짝퉁 예술인들이 복합문화회관에 자신들의 사무실이나 확보해 달라고 하는 수준이니, '될대로 되라'식의 정서가 만연한 것은 당연하다.


계룡복합문화회관  ‘자연환경 역사기록’ 기능 필수

 

계룡시가 추구하는 전원문화도시의 브랜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찾으라고 한다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전원도시라고 하여 쌈지공원 세웠다가 다시 부수고 더 큰 공원세우고, 주변 공원정비하고 어깨띠 두르고 환경보호 캠페인 한다고 해서 전원도시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계룡시에서 전원도시 운운하며 추진하는 환경관련 업무들은 타 지역에서도 주변환경 및 대기오염 등에 대비하여 실행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업무다.

 

계룡은 전원도시를 상징하거나 자료로서 소개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능이 없는 상태로 복합문화회관에 전원도시의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는 ‘계룡의 자연환경 역사기록' 기능이 필수적으로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복합문화회관이 과거에는 회관처럼 문화예술인들의 공연과 전시, 또는 주민편의시설 제공 등이 주요기능이었지만, 지금은 당연히 따라붙는 부수적 기능에 불과하여 별다른 문화관광 상품이 되지 못하고, 지역의 문화상품은 주변에 펼쳐져 있는 환경에 숨어 있다.

 

글쓴이가 경험한 몇 가지 외국 사례를 들면, 미국 서부지역을 가로내리는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달리다보면, 주변은 집한 채,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쓸모없는 황무지 벌판이 며칠 째 이어진다. 그런데 야생동물 간판을 따라  샛길로 들어가면 황무지 벌판 위에서 서식하는 몇 안 되는 야생동물 및 식물, 지역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동물들을 소개하는 작은 전시관들이 지역마다 있다. 외부 방문객들에게 지리적 특징을 환경자료들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다.

 

며칠 장거리 여행에 지친 여행객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찾아가는 공간이지만, 그곳은 황무지를 개척한 사람들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있다. 유럽도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을 소개하기 위해 지역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이나 식물 등을 소개하여 관광 상품화하는 일이 많다.

 

일본의 오다시(인구 5만) 근처 한 시골에 가면 작은 모래박물관이 있다. 그곳은 과거 광산산업이 성행했던 지역이나 석탄산업의 퇴조로 사람들이 모두 지역을 떠나고 광산과 관련한 환경자료 소개와 전 세계에서 구해 온 모래 한 줌씩을 소개하고 있다. 모래박물관에는 대형 모래시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빼어난 조형성과 과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환경, 과학, 예술을 소개한 작은 박물관에 연일 관광객들이 넘친다.

 

계룡복합문화회관에 계룡산에서 서식하는 야생 동,식물이나 역사적으로 존재했거나 전설 속에 기록되어 있는 생태환경 관련자료를 소개할 수 있는 자료관이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면, 외국의 사례들 보다 더 값진 재산으로 남을 수 있다. 문화예술 활동공간 기능의 제공도, 문화예술의 특성상 공간의 성격에 맞게 소재 개발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고, 관공서도 환경문화에 초점을 맞춰 문화예술 사업추진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즉, 계룡시가 조성하고 있는 복합문화회관은 문화예술 사업들의 기능을 받쳐줄 수 있는 지역의 특징적 유산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계룡이 전원도시로서 계룡산 환경과 관련된 크고 작은 자료들이 총집합된다면 복합문화회관의 기능이 지역의 문화관광 상품으로서 충분한 값어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이재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