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책을 읽다가 중간에 반드시 기록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진행되는 줄거리를 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읽고 있는 책이 수려한 문장력을 자랑한다거나 명작은 아니다. 동감할 수 있는 부분만 발췌하여 정리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그렇다.


이달 초 계룡시의회 의장실을 방문하여 책장에 대하소설 한 질(총10권)을 발견했다. 제목은 박용구의 대하소설 <계룡산>. 초판 발행(자유문학사)연도가 1992년이고, 책이 발간되기 전에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표지에는 "문학이냐, 외설이냐로 경향신문 연재도중 검찰이 입건했던 한국  최초의 소설이다"라며 "인간의 섹스행위 대담한 묘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판 당시 "외설과 섹스"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등장시켜 독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홍보문구로 보인다.


박용구의 대하소설 계룡산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1992년도 전후는 모든 장르(미술, 문학, 연극, 영화 등) 작품에서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논쟁작품들이 자주 등장하던 시기다. 돌아보면 최근의 사회정서로 볼 때 외설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계룡산> 1권 내용을 살펴보면 외설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남녀가 부적절한 정사를 나누는 평범한 표현임에도 1992년도에는 요란을 떨었나 보다.

<계룡산> 보다 6~7년 먼저 발간되었던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1권 초판이 1986년 10월 발행되었는데, 태백산맥에서 나오는 에로틱한 장면들의 묘사보다도 덜하다는 느낌이다.


-혹시, 이 책 계룡사람들 다 읽은 것은 아닐까?-

 

계룡산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시의회 의장실에서 만난 <계룡산>이라는 책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마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관심이 덜했을 터인데 왠지 계룡사람들 중에서 나만 저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류보선 의장에게 1권을 빌려왔다. 책을 빌려오면서 류보선 의장은 이 책을 읽었는지, 아니면 그냥 장식용으로 책장에 꽂아 놓았는지 등은 물어보지 않았다.


책은 첫장을 넘길 때부터 주욱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덤덤하게 무슨  줄거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읽는 책이 있고, 남들이 다 읽었다고 하니까 지식확보 차원에서 읽는 책도 있다.

<계룡산>은 계룡에 살고 있는 죄값(?)으로 책 제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이다. 책 제목은 계룡산인데 내용에서 계룡산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고, 지역의 역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계룡산>은 소설 속의 배경(지역)과 시대를 알아보는 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1권에서 계룡시 지역이 배경임을 알 수 있었다.

1권의 주요내용은, 조선시대 후기를 지나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강필운(서른 네살)이라는 남자가 계룡산 아래 '학선리'라는 곳에서 신흥종교를 창시하게 된다. 신흥종교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교주가 전국을 떠돌던 불한당으로 '학선리'라는 곳에 머물며 주워들은 지식을 동원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은 하늘에서 인간을 구하러 내려왔다"고 속이고 활동하는 사이비종교다.

 

'학선리'는 '남선리'


소설에서는 동네 이름을 '학선리'라고 하였는데, 학선리에서 아랫 쪽에 천이 흐르고 조금 지나면 팥거리(두계) 동네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태조 때 도읍을 옮기려고 했던 사실과 무학대사 이야기 등을 종합해 보면 신도안면 어느 한 동네다.  남선리를 학선리로 지칭한 듯.

현재 계룡시 신도안면(전 남선면) 남선리, 정장리 등 계룡대가 위치한 지역을 말하는 듯하다. 이곳은 잘 알다시시피 수많은 신흥종교집성촌이었음은 명백하다. 소설에서 신흥종교들이 조선시대 후기부터 생성되어 각자의 교리를 가지고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학선리에 신흥종교가 뿌리를 내렸던 이유는 일제시대임에도 동네사람들이 세상물정에 어둡고 무지하여 하늘에서 왔다거나 하늘의 계시를 받고 있다고 속이면 교도들이 재산이나 여자들을 헌납하는 행위와 연결되고 있다.

 

일제 때부터 계룡산 주변에서 성행했던 일부 신흥종교의 부흥은 인간의 본능과 소유욕을 충족하기 위한 심리적 공격이 주요했다. 무지한 사람들을 통솔하는 방법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을 동원하여 "당신은 나만 믿으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라는 감언이설인데, 현 시대에도 감언이설을 전파하는 정치인을 믿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다. 어리숙한 백성들을 현혹하는 무리는 소설 <계룡산>에서 등장하는 사이비 교주와 같은 집단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계속>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