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다

 

[등장하는 주인공]

 

프로필

 

이름: 가카(지역사회의 중요한 사건발생시 개명 예정)

본: 진도 개씨 엄사리파

출생지: 엄사리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남.

성: 암컷

나이: 5개월

외모: (사진)

 

① 내 이름은 '가카'

 

주인장은 다섯 마리의 형제들을 공평하게 대했지만, 오빠와 언니들이 많아 내 차지는 별로 없었다. 힘센 큰 오빠가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암컷이라 인기가 없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꼬리를 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빨리 커서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날만 혀를 꼬며 기다렸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 가족이 다른 개가족들과는 혈통이 다르다고 늘 강조했지만, 나는 그저 개로 태어났을 뿐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엄마가 크게 짖었다. 밤에 검은 손이 달린 인간이 들어왔을 때 보다 더 크게 짖었다. 주인장이 처음 보는 인간 한 명과 무슨 말을 주고 받았다. 엄마가 왜 주인장 앞에서 그렇게 크게 짖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주인장과 인간 한 명은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이 막둥이라서 눈치가 빨라요. 잘 키우세요. 개 좋아하시나 봐요?"

"아뇨, 동물 중에서 개를 최고 싫어합니다"

"근데 개를 왜 키우시게요? 혹시? ... 이 개는 된장 바르면 안 되는 개입니다"

"아. 글 좀 쓰려고요"

"글을 쓰려고 개를 키워요?"

"네. 그런게 있어요"

인간의 말이나 표정을 알 수는 없지만, 정통 혈통 진돗개의 느낌으로는 나를 호감 있게 바라보는 눈빛이 분명했다. 처음이었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질투심이 많은 둘째 언니가 내 앞으로 밀고 나와 처음보는 인간한테 꼬리치며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인간은 빼어난 미모의 둘째 언니는 처다보지도 않고 나만 계속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지껄이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처음 보는 인간은 나의 새 주인이 분명했다.  

새 주인이 데려간 곳은 옛 주인 집보다는 적막한 곳이었다. 옛 주인장의 집(카센터)은 '붕붕', '딱각딱각'거리는 둔탁한 쇳소리가 났는데, 새 주인장이 데려간 곳(사무실)은 분위기가 달랐다.

 

첫 날이었다. 주인장은 내게 잠자리를 안내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인간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형태의 기구나 각양각색의 종이들이 많았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지만 나는 필수적으로 영역표시를 해야만 했다. 여기 저기 똥을 싸고 오줌을 뿌렸다. 새 주인에게 관심을 얻으려면 다양한 방법으로 똥을 싸고 오줌을 뿌려서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일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개로 태어났지만, 인간보다 못할 것이 없다. 오히려 인간을 능가하는 신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보신용으로 태어난 똥개나 잡종개와는 다르다. 주인만 성실하게 지켜주면 나의 뜻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아빠, 언니 오빠들을 합하여 일곱 마리라는 대 가족 사회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그러한 경험이 나에게는 철학적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나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면 인간들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나의 '개철학'들을 학습시킬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고 고민해 왔다.

 

문밖으로 인간의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이 온 듯했다. 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문을 밀고 들어오는 주인에게 꼬리를 쳤다.

 

"어잇, 가카새끼 너 아무데나 똥 싸면 뒈지는 줄 알어!"

옛 주인은 나를 막둥이라고만 불렀는데, 새 주인은 나를 바라보며 '가카, 가카새끼, 가카야!'라고 자주 불렀다. 새 주인은 내 이름을 '가카'라고 지었나 보다. <계속>/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