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작품은 완성된 드로잉 개념으로 감상

요즘의 미술교습소․학원, '둔재'를 '천재'로 표현

썩은 글씨는 감흥이 없다.

작가정신과 철학은 더욱 없다.

추사의 아류작보다도 못한 글씨들 시각공해다

 

글/이재수

 

나는 서예작품을 뜻이나 음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현대미술의 드로잉과 같은 이미지로 감상하는 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저 글씨가 신맛을 내는 지 매운맛을 내는 지를 평가하면 그만이다. 공직자라면 저 글씨가 의사결정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성성이 있고 호감이 있어 보이는지 아니면 형식적인 공문서와 같은 글씨인지 판단하면 그만이다.

 

스포츠 선수라면 저 글씨가 기본자세와 폼을 갖췄는지 또는 생동감이 있거나 스릴 넘치는 장면이 있는지를 판단하면 그만이다. 군인이라면 저 글씨가 공격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아니면 방어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졸과 대장은 구분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면 그만이다.

 

현대미술 전공자로서 서예를 보는 시각은 조형언어로 선택된 글씨 이미지와 글씨들을 배치한 화면구성의 조형성으로 감흥의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서예나 회화나 조형연구의 학문이라고 볼 때 애써 구분할 이유는 없지만, 서예의 경지를 체험해 보지 못한 입장에서 내 전공처럼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하여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서예작품에서 글의 뜻을 느끼는 감흥은 어느 누구나 비슷한 입장이 취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외형으로 들어나는 서예작품의 실질적인 감상은 글의 조형성에 있다.

 

현대인들에게 추사의 작품은 감히 논할 수 없는 대상이다. 예술의 세계에서 그의 사상적 깊이는 따를 자가 없어 평가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다.

 

최근 서예와 관련한 원고를 부탁한 곳이 있어 관련자료를 찾다가 추사 김정희가 여덟 살에 아버지에게 보낸 문안편지 한 통(사진1)과 일흔 한 살에 생을 마감하기 전에 썼다고 알려진 봉은사 현판 글씨 한 점(사진2)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추사가 여덟 살에 쓴 글씨는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폭넓은 화면구성임에도 바르게 조율하려고 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글자 하나 하나 명확한 획과 정자를 구사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화면구성은 상대적으로 비율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어린 아이가 썼다는 순수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글씨다. 하지만 여덟 살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추추사의 글씨사는 신동이다.

 


요즘의 미술교습소․학원, 둔재를 천재로 표현

 

흔히 꼬마들의 미술을 지도하는 미술학원이나 교습소 선생이 아이가 풍경화 한 점을 재미 있게 그렸다고 마치 천재미술능력을 가진 것처럼 학부모를 띄워서 미술학원에 계속 다니게 하지만, 거기에 추사의 글씨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 미술학원 등에서 말하는 천재는 둔재를 거꾸로 표현하고 있다면 틀림없다.

 

많은 학자들이나 미술이론가들이 추사의 서체 변화과정을 청년기에는 힘과 정의, 중년기에는 품위와 멋, 말년기에는 독창성 있는 추사체의 완성으로 보고 있다.


재미 있는 점은 추사가 서체의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말년에 독창성 있는 서체를 확립시켰다고 하지만, 추사가 일흔 한 살로 생을 마감하기 3일 전에 쓴 작품으로 알려진 봉은사의 현판 글씨 한 점이 흥미로운 감상거리다.

 

추사의 마지막 작품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추사의 글씨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멋을 내지 않고 욕심도 부리지 않고 또박또박 쓴 글씨로 추사가 여덟 살에 쓴 글에서 느껴졌던 익살스럽고 순진한 멋까지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추사는 서체에서 일생동안 힘과 정의, 품위와 멋을 경유하여 독창성 있는 추사체까지 부리다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동심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현대미술의 드로잉 작품들을 보면 원로작가들의 작품에서 멋을 부리지 않은 어린 아이 그림처럼 순진한 작품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완숙에 이르면서 과거 젊었을 때의 세련됨과 욕심은 잘 부리지 않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대가의 마지막 작품은 어릴 적 동심을 그리워하거나 욕심을 버린 초연함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여 관련자료들을 찾아보던 중에, 이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던 책 중에서 <완당평전>의 저자 유홍준 교수도 이 부분을 비슷하게 설명했다.


"봉은사에 다시 이 글씨를 보러 갔는데 그날은 <판전> 글씨가 아주 어린애 글씨처럼 보였다. 나는 행여 오래 보고 있으면 저 대교약졸의 그윽한 멋이 떠오를까 기대하면 명사하듯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러나 왠지 완당이 8살때 부친에게 보낸 편지 글씨와 대단히 닮았다는 느낌만을 받았다. 참으로 신기한 느낌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원초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러면서 유홍준은 원초로 돌아가고자 하는 삶을 이승만 대통령이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다음과 같은 추정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 망명해 있을 당시 부인 프란체스카와 쓸쓸히 지냈다. 글들은 항시 영어로 대화했다. 프란체스카가 한국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만은 운명할 때 침상에 누워 프란체스카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한국어로 힘들여가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프란체스카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그 유언은 세상에 전해질 수 없었다. 인생은 그렇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완당의 <판전> 글씨도 정녕 그런 근원으로의 회귀였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 책에서 유홍준은 김정희는 호가 많은데, 중년 이후에 '추사'라는 호를 사용하지 않고 거의 ‘완당’으로 사용했다며 그의 호는 '완당'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한다.


 

썩은 글씨는 감흥이 없다. 작가정신과 철학은 더욱 없다.

 

추사 고택(예산) 입장권 판매소에서 구입한 붓통이다(사진3). 추사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참 멋스럽다. 완벽한 화면구성을 창출한 현대미술의 드로잉 작품과 같다.

 

천재 서예가가 수십년 조형성을 연구하여 얻은 글씨체인데, 요즘 서예작품 전시회에 가보면 추사의 껍데기만 흉내낸 글씨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추사의 청년기 때 글씨체를 흉내낸 것도 있고, 중년기 때 글씨체를 흉내낸 것도 있고, 말년기 때 글씨체를 흉내낸 것도 있다. 그런데 추사가 여덟 살에 쓴 글씨보다 못한 것들을 내 놓고 서예가라는 간판까지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수준으로 서예를 가르치는 선생이라 한다.  

 

시각공해다. 그런 글씨에 감흥이 있을 까닭이 없다. 작가의 정신과 철학은 더욱 있을리 없다. 글씨의 호흡도 불규칙하여 감상자의 숨이 턱턱 막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글씨들을 '썩은 글씨'라고 하는데, 사상적 깊이 없이 얄팍한 손재주에 의지한 탓으로 힘도, 멋도, 품위도 아무 것도 없다. 생산자체를 하지 말아야 할 시각공해 이미지들이다 .

 

감상자들이 썩은 글씨를 보고 "난 서예를 잘 몰라서 좋은 작품인지 잘 모르겠다"는 감상평에서 당연한 이치를 발견할 수 있다. 썩은 글씨에서 감흥이 전달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기는,  문학잡지 편집장에게 막걸리 한 병 사주면서 일기장 세 장 찢어 주면 잡지에 실어주고 시인 간판을 내린다. 요즘은 예쁜 '꽃이름'  몇 개만 알고 있으면 모두 시인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간판으로 시인등단했다고 '시인'이라는 빵모자 쓰고 다니는 아줌마 아저씨들 많다. 복도식 아파트 각 층마다 한 집 걸러 한 명씩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직하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착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