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가시가 돋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편집자 주.

 

작가 조정래가 1974년에 발표한 중편 '황토'를 장편으로 전면 개작하여 지난 5월 출판했다. 조정래가 태백산맥을 집필하기 이전에 쓴 작품이라면, 역사적인 배경으로 볼 때 황토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밑줄기가 되어 대하소설의 장정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토의 줄거리

 

해방 이전 일제 탄압과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은 시대적 상황과 민족의 불행한 역사를 한 여인의 몸에 기록했다.

70년대 40대 후반의 김점례는 박태순, 박세연, (박세진), 박동익의 어머니다.(여기서 박세진은 간난아이 때 병으로 죽었다)


작품의 시대적인 배경은 70년대 주인공 김점례의 피가 다른 자식들이 다툼이 있는 것으로 시작되나, 김점례의 기구한 팔자는 처녀시절이었던 해방 이전부터 시작된다. 김점례는 열일곱살에 주재소의 일본순사 주임 아마타의 첩으로 살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하고 있던 일본인 농장에서 농장주인이 어머니를 겁탈하려는데 분개한 아버지가 주인을 두들겨 팼고, 그 죄로 주재소로 끌려간다. 어머니와 김점례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보지만 일본인을 때렸다는 죄 값은 딸 김점례가 일본인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소설 황토

 

김점례는 원하지 않는 아마타와의 불안한 생활 중에 태순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고, 아들을 낳자마자 해방이 되어 아마타는 김점례와 태순이를 버리고 일본으로 도망간다.

 

이후, 김점례는 태순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큰이모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그곳에서 큰이모부가 운영하는 공장의 청년 박항구와 결혼을 한다.

 

박항구는 부모들이 독립투사로 활동하다 숨졌고 친일파들에게 보복하는 일과 사회주의 이념에 몰두한 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직책으로 활동한다. 박항구는 김점례와 정식 부부로 생활하면서 딸 세연, 세진을 낳았다.

박항구는 인민군이 전세에 밀려 아내와 딸들을 남겨두고 북으로 월북하게 된다. 김점례는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아내로서 군수사기관에서 둘째 딸 세진이를 업고 조사를 받던 도중 미군 대위 프랜더스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군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마치고 풀려나자마자 둘 째 딸(세진)이 거기서 얻은 병으로 죽게 되고, 김점례에게 도움을 주었던 미군대위 프랜더스의 현지처 살이가 시작된다. 프랜더스와의 사이에서도 눈이 푸른 동익이를 낳았다. 프랜더스도 전쟁이 끝날 무렵 김점례와 아들을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국 전쟁 이후 김점례에게는 각기 피가 다른 자식 셋이 남았다. 태순이는 일본 순사의 아들, 세연이는 월북한 인민군 간부의 딸, 동익이는 미군 대위의 아들이다.

 

김점례는 자신의 남편은 두 번째의 남자(즉, 한국남자) 박항구로 일관했다. 피와 성이 다른 자식 모두 박씨 성으로 호적등재를 한 것을 보면, 김점례의 의식에는 굴욕적인 삶의 한 편에서도 한 남자의 여인으로 존재하기를 원한 듯하다.

 

김점례는 박항구와의 결혼생활 3년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회상하는데, 그 사이에 태어난 세연이가 피가 다른 오빠와 동생을 아끼는 마음씨도 배경이 있음직하다.

 

소설 제목이 '황토'라 하여 내용 중에서 황토와 연관성 있는 부분을 찾아보았지만, 짧은 문구 하나밖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린 영혼이 황토의 중심에

 

'황토'와 연관된 내용은 228쪽에 나온다. 간난아이 때 죽은 둘째 딸 세진이가 등장하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김점례가 프랜더스의 부대 야산에 세진이를 묻는 장면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점례는 흙을 항아리 위에 뿌렸다. 점점이 떨어지는 붉은 황토 위에 남편의 얼굴이 어리고 있었다.'

 
불행한 한반도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한 여인 옆에서 짧게 생을 마감한 어린 영혼이 소설의 중심이 된 것이다.

 

김점례는 결혼을 하겠다는 큰 아들 태순이의 전화를 받고 딸 세연이에게 짧막한 미래의 유서를 써놓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드는 것을 끝으로 황토의 책장은 덮어진다. 책장을 덮고 보니 죽은 세진이가 계속하여 머리속에 남아 있다. 무언가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듯한 구성이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 황토 집필 이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부었는지도 모른다. 

 

소설 황토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주인공 김점례의 삶은  한반도의 민족적 비극이 낳은 시대적 아픔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들이다.  조정래가 황토를 처음 발표한 시기는 1974년으로 37년이 지났다. 불행한 역사의 아픔은 결국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겼던 것도, 한반도가 분단의 역사를 갖게 된 것도 모두 정치인들에 의해서다. 이 사회가 민초들의 불행한 삶의 고통을 얼마나 치유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현대인들의 몫이다. 소설 황토를 통해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이 낳은 시대적 아픔을 순식간에 체험했다./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