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카메라필름을 사용하는 수동카메라를 사용해 본 지 꽤 오래되었다. 학생 때부터 늘 옆에서 내 작업을 도와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 쪽 구석에 박혀 있거나 책장 속의 장식용이 되어 버렸다.
수년 전 디지털 카메라의 사양이 변변하지 않아 기능이 뒷받침 되지 않거나 촬영조건이 열악할 때 가끔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젠 거의 만지는 일이 없는 듯하다.

수동카메라는 미술을 전공한 내게는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의 깊이를 이해하려면 수동카메라를 먼저 터득해야 한다는 고집들이 미술가들이나 사진가들에게는 철학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젠 그러한 철학도 밀려난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필름을 구하기도 힘들고 현상소도 많지 않다.

내게 사진연구는 조형언어의 개발 목적이었지만, 사진을 잘 찍기 위한 기술습득은 필름이나 인화지를 아끼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가 더 컸다. 디지털 카메라는 찍고자 하는 똑같은 대상을 열 번 찍어도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는 찍을 때마다 필름과 인화지를 소모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필름과 인화지 소모를 막기 위해 찍고 싶은 대상을 단 한 번의 셔터로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한 기술습득이 가장 중요했고, 현상인화과정을 마칠 때까지 사진결과물을 기다리는 설렘은 열 달 임신기간을 거쳐 탄생하는 아이를 기다리는 심정과 같았다.
수동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수동카메라의 큰 지식은 주어진 촬영조건에서 사진이 어떠한 결과로 찍힐 것인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감각이 가장 중요했다. 그 감각을 익히려고 쓴 각종 카메라, 필름, 인화지 값은 아마 30평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고 남을 만한 돈이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카메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자연스럽게 촬영자세가 취해진다. 필름이 들어 있지 않은 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바디 속에서 셔터와 반사경이 움직이는 마찰음은 언제 들어보아도 경쾌한 리듬이다. 철컥철컥. 손끝 감각을 타고 온 몸에 진동이 전달될 때는 묘한 전율이 흐른다.

카메라의 변천과정에서도 사람들의 변화된 삶과 생각들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불평 없이 적응한다. 메마른 정서와 획일적인 감성만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푸념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산물도 인류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위안 삼는다.

카메라에 올라와 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책장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진을 찍고 나서 현상과정 이후 어떻게 사진이 나오는지 기다리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어두운 암실이나 현상소에서 사진이 나오기까지 숨죽이며 기다리던 그 설렘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아야겠다./숲

계룡신문 창간6주년/3월1일 창간기념일